처리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TTJ 코딩클래스
정규반 단과 자료실 테크 뉴스 코딩 퀴즈
테크 뉴스
Hacker News 2026.08.31 32
#AI

매트록스 반세기: 프로용 그래픽카드는 어떻게 시장을 개척했나

Hacker News 원문 보기

오늘날 그래픽카드라고 하면 게임과 AI 연산을 떠올리지만, 이 산업의 초기에는 전혀 다른 얼굴이 있었다. 캐나다 퀘벡에서 출발한 매트록스(Matrox)는 CPU와 영상 출력을 연결하는 인터페이스라는 틈새에서 시작해, 이후 반세기 가까이 '전문가용 그래픽'이라는 뚜렷한 정체성을 유지한 회사다. 창업 배경과 초기 제품군을 따라가다 보면, 상용 PC 시장이 형성되기도 전에 그래픽 하드웨어 사업이 어떤 논리로 굴러갔는지가 드러난다.

창업자 론 트로티에(Lorne Trottier)는 1948년 몬트리올에서 태어난, 스스로를 우주와 과학에 빠진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엔지니어였다. 맥길대학교에서 1973년 공학 석사를 마친 그는 CPU와 영상 출력을 잇는 시장이 있다고 판단했고, 친구 브란코 마티치(Branko Matić)와 여가 시간에 아이디어를 다듬었다. 1976년 두 사람은 각자의 성을 딴 이름(Matić의 Ma, Trottier의 Tro)으로 매트록스를 세웠다. 초기 운영은 소박했다. 트로티에는 본가에 전화선을 하나 더 놓고 어머니가 접수를 맡았으며, 본인은 직장을 다니면서 회사를 꾸렸다.

잡지 한 페이지에서 시작된 흑자

당시 기술 기업의 성패는 특정 관심사를 다루는 잡지에서 갈렸다. 매트록스는 잡지 Electronics의 신제품 소개란에 무료로 실렸고, 이를 통해 첫 제품인 비디오 RAM(MTX-1632)으로 2만 달러 규모의 주문을 확보했다. 회사는 곧바로 흑자로 돌아섰다. MTX-1632는 512바이트의 650ns 영상 메모리로 32×16 아스키 문자 화면을 만들어냈고 가격은 198달러였다. 흔히 알테어 8800과 엮여 이해되지만, 이 제품들은 애초에 S-100 버스 가정용 기기를 겨냥한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시장에서의 위치는 분명했다. 곧이어 나온 MTX-256²는 256×256 도트 해상도를 제공했고, 중앙 타이밍 유닛과 이미지 메모리 등으로 구성됐다. 1976년 8월경 기준으로 이 정도 성능을 DMA와 함께 1,000달러 미만에 제공하는 제품은 없었다. 100달러대의 저해상도 키트나 1만 4,000달러짜리 DEC GT-40 같은 고가 장비 사이에서, 630달러의 매트록스는 재정적으로 여유 있거나 열정이 남다른 애호가에게 명확한 선택지였다. 성능당 가격이라는 축에서 빈 자리를 정확히 파고든 것이다.

S-100에서 전문 시장으로

1976년 애틀랜틱시티에서 열린 PC '76은 전환점이었다. 약 5,000명이 몰린 이 행사에서 애플이 목재 케이스에 키보드를 통합한 애플 I을 처음 크게 선보였고, 트로티에는 손에 넣을 수 있는 모든 데이터시트를 모았다. S-100 기술에 둘러싸인 경험은 다음 제품으로 이어졌다. 1978년 초 출시된 것으로 보이는 ALT-256²는 자체 리프레시 메모리를 갖춰 화면 갱신에 CPU 시간을 쓰지 않았고, 단일 S-100 슬롯에 꽂아 256×256 고해상도 출력을 냈다. 대다수 경쟁 S-100 그래픽 어댑터보다 약 네 배 높은 해상도에 컬러와 그레이스케일, 유럽·미국 TV 규격 호환까지 제공했다. 뒤이은 ALT-512는 해상도를 512×256으로 높이거나 256×256 화면 두 개로 쓸 수 있었다.

매트록스는 1978년 자사 제품이 1만 곳 이상에 설치됐다고 홍보했는데, 여기에는 NASA 바이킹 미션의 지상 관제 디스플레이도 포함됐다. 1979년에는 한 장의 보드로 네 대의 디스플레이를 구동하는 쿼드 비디오(Quad Video)를 앞세워 금융사에 납품하는 시스템 통합업체를 겨냥해 월스트리트로 진출했다. 회사 운영에서 트로티에는 휴렛과 팩커드의 경영 방식을 본떠 이익 공유, 사내 보육·여가 시설, 느슨하고 격식 없는 분위기를 의도적으로 도입했다. 1979년 직원은 50명, 연 성장률은 약 200%에 달했다.

플랫폼을 갈아타며 살아남다

매트록스의 역사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플랫폼 이동 능력이다. 1980년대 초 멀티버스와 DEC PDP-11용으로 동등한 성능의 카드를 냈고, 1983~1985년에는 인텔 80286과 NEC uPD7220을 조합해 초당 2,000만 픽셀 채움 성능을 낸 SX-900 같은 제품을 선보였다. IBM PC·XT가 시장을 장악하자 ALT-512 계열 하드웨어를 8비트 ISA용 프레임 그래버와 영상 어댑터로 개조했다. 1986년에는 미 육군의 병사 훈련용 멀티미디어 시스템(EIDS) 사업을 약 7,200만 달러 규모로 수주했는데, 컬러 그래픽 생성·프레임 그래빙·디지털 오디오를 한 장의 카드에서 동시에 처리하는 전문성이 선정 이유였다. 특정 컴퓨터나 레이저디스크 공급사에 종속되지 않게 만든 점도 계약의 핵심이었다.

다만 시장을 앞서간다고 늘 이기는 것은 아니었다. 1987년 매트록스는 3D용 애드인 보드 SM-640을 4,995달러에 내놓으며 IBM PC의 대중성이 3D 소프트웨어 업체를 끌어들일 것이라 기대했지만, 이를 활용할 응용 프로그램이 너무 적어 실패했다. 3D 전문 영역은 한동안 미니컴퓨터와 워크스테이션이 계속 쥐고 있었다. 반면 아케이드 게임에도 쓰인 TMS34010 기반의 PG-1281은 윈도우와 X 윈도우 드라이버를 갖추며 고급 시장에서 자리를 잡았다. 이 명암은 하드웨어 성능이 아니라 소프트웨어 생태계가 시장을 결정한다는, 지금도 유효한 교훈을 보여준다.

1990년대에 접어들며 매트록스는 자체 설계 칩과 단일 칩 비디오 프로세서 MGA로 전환했고, 1995년 밀레니엄(Millenium)으로 2D 화질과 윈도우 GUI 가속의 기준을 세웠다. 1996년 미스틱(Mystique)은 비싼 WRAM 대신 64비트 SGRAM을 써 원근 보정과 투명도, 트루컬러 라이팅 같은 텍스처링 기능을 499달러에 담았다. 대신 이중선형 필터링, 포깅, 밉맵, 안티에일리어싱은 빠져 있었다. 이런 취사선택은 매트록스가 화질과 가격 사이에서 어떤 균형을 겨냥했는지 잘 보여준다. 국내 실무자 관점에서 매트록스의 궤적은, 성능당 가격이라는 명확한 축을 잡고 여러 버스와 플랫폼을 넘나들며 전문 시장을 붙든 전략이 어떻게 오래 지속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생태계가 받쳐주지 않는 앞선 제품이 왜 무너지는지를 동시에 읽게 해준다.

이 뉴스가 유용했나요?

이 기술을 직접 배워보세요

AI 도구, 직접 활용해보세요

AI 시대, 코딩으로 수익을 만드는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AI 활용 강의 보기

"비전공 직장인인데 반년 만에 수익 파이프라인을 여러 개 만들었습니다"

실제 수강생 후기
  • 비전공자도 6개월이면 첫 수익
  • 20년 경력 개발자 직강
  • 자동화 프로그램 + 소스코드 제공

매일 AI·개발 뉴스를 받아보세요

주요 테크 뉴스를 매일 아침 이메일로 전해드립니다.

스팸 없이, 언제든 구독 취소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