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AI가 GPT-6 아스트라(Astra)의 공개 게시물 첫머리에 KiCad에서 회로 기판을 다루는 데모를 실었다. 대형 모델 발표 자리에 전자 설계가 등장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례적이다. 물론 프롬프트 한 줄로 스마트폰 한 대를 통째로 설계해 달라고 맡길 수 있는 단계는 아직 아니다. 다만 이 데모는 오래전부터 제기돼 온 질문을 다시 끄집어낸다. AI가 만들어 낸 전자 회로가 정말 쓸 만한지를 우리는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
atopile를 만든 팀이 운영하는 벤치마크 EEBench는 이 물음에 답하려는 시도다. 흥미로운 관찰은, 현재 모델들이 통상적인 설계 툴에서 보여 주는 결과물보다 실제로는 전자공학을 훨씬 많이 알고 있다는 점이다. 교과서, 데이터시트, 애플리케이션 노트, 방대한 코드를 이미 읽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표현 방식이다. 그래픽 CAD 툴을 조작하게 하면 에이전트는 화면을 클릭하고 좌표와 메뉴, 애플리케이션 상태를 추적하는 데 대부분의 문맥을 소모한다. 정작 전자공학을 시험하는 시간은 줄어든다.
코드로 다루는 회로
EEBench는 GUI 대신 atopile를 쓴다. 회로가 선언적 코드로 존재하기 때문에 에이전트는 부품과 연결, 전기적 제약을 직접 다룰 수 있다. 설계를 바꾸고, 빌드하고,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무엇이 실패했는지 프로젝트를 벗어나지 않고 확인한다. GUI에서 선을 긋게 하는 방식보다 이 접근이 훨씬 잘 작동했다는 것이 팀의 설명이다. 컴퓨터 조작 능력이 아니라 전자공학 자체를 검증하는 데 자원을 집중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공개 과제 중 하나는 주택용 전력량계를 소재로 한다. 5V 전원이 사라지면 회로는 프로세서를 20ms 동안 더 살려 두어 누적 검침값을 저장하게 해야 한다. 이 구간 내내 보호 레일 전압은 프로세서의 브라운아웃 임계치 3.0V 위에 머물러야 한다. 대부분의 모델은 직관적으로 옳은 결론에 도달한다. 커패시터를 추가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커패시터가 문제를 흥미롭게 만든다. 세라믹 부품은 전압이 걸리면 표기 용량보다 훨씬 적은 정전용량을 내놓고, 부품마다 공차가 있으며, 용량을 늘리면 비용과 공간이 늘고 전원 복귀 시 레일 재충전이 느려진다. 공칭값으로는 동작하는 설계가 실제 도착한 부품에서는 실패할 수 있다.
트레이드오프를 채점하다
EEBench는 시뮬레이션에서 입력 전원을 끊고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측정한다. 정전 구간 전압, 동작점에서의 실효 정전용량, 전원 복귀 후 회복, 그리고 패키지·유전체·내압·비용의 한계를 함께 점검한다. 전력량계는 쉬운 축에 속한다. 더 어려운 아날로그 과제에서는 연산증폭기 주변에 다중 피드백 저역통과 필터를 합성하고, 요구되는 극점을 위해 저항과 커패시터 비를 풀며, 모든 부품을 최악의 공차 코너로 밀어붙인 뒤에도 이득과 차단 주파수, Q를 규격 안에 유지해야 한다. 하네스는 각 코너마다 SPICE 덱을 다시 구성하고, AC와 과도 응답을 측정해 명명된 프로브에 결과를 묶고, 규격 상·하한과 대조해 기록한다.
여기서 핵심은 방정식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EEBench는 데이터시트에서 추출한 사양을 SPICE 모델로 옮긴 실제 제조사 부품을 쓴다. 에이전트는 공차 코너 전반에서 동작하면서도 실재하고, 주문 가능하며, 제품에 걸맞은 합리적 가격의 부품 조합을 찾아야 한다. 교과서의 이상적 값을 고르는 일과 달리, 전기적 성능과 비용과 공급 사이의 이 절충이야말로 실제 하드웨어 설계에 가깝다. 모든 공학이 그렇듯 전자공학도 결국 트레이드오프로 수렴한다. EEBench의 채점은 완전히 결정론적이며, 제출된 설계를 빌드해 회로 그래프와 부품표를 만들고 일련의 시뮬레이션과 설계 검사를 돌려 요구사항마다 한계를 지닌 측정값을 산출한다. 코딩 에이전트에게 컴파일러와 테스트를 주는 것과 비슷하되, 여기서 테스트가 재는 것은 전압과 부품 거동이다. 비용 효율은 기술 점수와 결합되지만, 회로가 일단 동작해야만 비용이 점수에 도움이 된다.
성적표가 말해 주는 것
9월 1일 결과는 고무적이다. 13개 과제로 구성된 EEBench V1에서 클로드 오푸스 5가 61.6%로 선두를 차지했고, 그록 4.6이 57.1%로 뒤를 이었으며 클로드 페이블 5.1이 56.4%로 근소하게 그 뒤였다. 특히 xAI가 그록 4.6 모델 카드의 '엔지니어링 가속' 항목에 3D 모델링·파라메트릭 CAD 평가와 나란히 EEBench를 포함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xAI가 공개한 실행에서 그록 4.6은 최고 추론 강도로 60.0%를 기록했다. 프론티어 랩이 신규 모델의 공학 능력을 설명하는 데 이 벤치마크를 활용했다는 사실은, 이 영역이 하나의 카테고리로 자리 잡고 있음을 시사한다. 반면 지금까지 테스트한 오픈AI 모델은 표 하단에 위치했다. GPT-5.5가 42.3%, GPT-5.6 솔이 39.4%였고, GPT-6 아스트라의 결과는 아직 없다.
한계도 분명하다. EEBench V1은 시뮬레이션을 통한 아날로그·디지털 설계를 다룰 뿐, 완성된 제품을 배치·제조·기동할 수 있는지는 아직 말해 주지 못한다. 현재 벤치마크는 요구사항 정의, 설계, 검증 루프에 집중하는데, 이곳이 유용한 공학 작업을 객관적으로 채점할 수 있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 시뮬레이션 하네스는 전자공학용 강화학습 환경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실패한 실행은 어떤 전압이 한계를 벗어났는지, 어느 코너에서 무너졌는지, 불필요하게 비싼 설계로 문제를 풀었는지를 알려 주므로, 스키매틱이 그럴듯해 보인다는 모호한 평가보다 훨씬 풍부한 학습 신호가 된다. 실무자 입장에서 되새길 대목은 결국 하나다. AI가 회로 방정식을 푸는 것과 조달 가능하고 공차에 견디는 부품을 골라내는 것은 다른 문제이며, 진짜 검증은 시뮬레이션 위에서 결정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지금 회로를 AI에게 맡길 수 있느냐는 물음에 대한 답은, 일부는 그렇다, 그러나 심박 조율기를 설계시켜 그대로 이식할 단계는 아니다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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