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AI가 지식노동의 초안 작성과 조사 업무를 빠르게 잠식하면서, 전문직을 길러내는 교육기관들은 공통의 딜레마에 직면했다. 도구 사용을 금지하면 현실과 동떨어진 졸업생을 배출하고, 방치하면 사고력이 자라기도 전에 판단을 기계에 위탁하는 습관이 굳어진다. 시카고대 로스쿨이 발표한 AI 전략 성명은 이 긴장을 정면으로 다룬 드문 사례다. 이 학교는 2022년 말 ChatGPT 공개 직후부터 대응을 시작해 2023년 초 AI 위원회를 꾸렸고, 1학년 법률 조사·작문 과정에 AI 모듈을 넣고 상급 과목을 개설했으며, 사법 접근성 개선 도구를 개발하는 AI 랩을 세우고 실무 변호사가 쓰는 자원을 학생이 쓰도록 주요 AI 기업과 라이선스를 협상해 왔다.
세 갈래의 원칙
지난 1년간 동문, 로펌·기업 리더, 리걸테크 임원, 신입 변호사, 그리고 내부 구성원까지 폭넓게 자문한 결과 학교가 추린 방향은 세 가지다. 첫째는 'AI에 강건한(AI-resilient) 교수법과 평가'로, AI가 만드는 손쉬운 정답에 기대는 대신 지속적이고 힘든 몰입을 보상하는 방식을 설계하는 것이다. 둘째는 뛰어난 변호사를 구별짓는 '본질적으로 인간적인' 역량, 즉 구두 변론, 전략적 판단, 비판적 사고, 의뢰인 관계 형성 같은 영역을 다시 전면에 세우는 것이다. 셋째는 AI를 책임 있고 효과적이며 윤리적으로 쓰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강건함의 정의다. 학교는 모든 AI 사용을 막으려는 것이 아니라, 수업 전 배경 개념을 물어보거나 연습문제를 생성해 학습 몰입을 높이는 용도는 오히려 권장한다고 명시한다.
학년에 따라 다른 강도
주목할 대목은 단일 규칙이 아니라 학습 단계별로 강도를 달리한 설계다. 1학년 필수 핵심 과목—민사소송법, 불법행위법, 계약법, 헌법 등—에서는 2026~2027학년도 시범 운영으로 강의실 내 노트북·태블릿·휴대폰 사용을 전면 금지하고, 시험은 인터넷·전자파일·앱 접근 없이 대면으로 치른다. 필기를 돕는 지정 서기, 실시간 투표 같은 특정 활동, 장애 학생 편의는 예외로 둔다. 근거는 명확하다. 1학년은 비판적 사고의 토대를 쌓는 시기이고, 정작 이 시기 학생은 AI 출력의 품질을 판별하는 능력이 가장 낮기 때문이다. 반면 상급 선택 과목에서는 소크라테스식 문답과 무기기·무접근 시험이 '기본값'으로만 남고, 교수의 실험을 장려한다. 맞춤형 챗봇 학습 도우미, AI 생성 연습문제, 중간고사·조별 과제·구두 발표 같은 형성평가가 그 예다.
1학년 법률 조사·작문 과정은 또 다르다. 상당수 학생이 여름 실무 현장에서 이미 AI로 조사와 작문을 요구받는 현실을 인정해, AI 사용법 자체를 교육에 포함한다. 다만 원칙은 'AI 없는 글쓰기를 토대로 삼고 그 위에 AI를 얹는다'는 것. 학생은 한 해 동안 AI 없이 직접 쓰면서도 조사·수정·초안 반복·구두 변론 준비에는 AI를 쓰고, 교수와 함께 자신의 글과 AI 사용 내역을 같이 검토한다. 목표는 스스로 쓰는 능력과 AI 출력을 감독·비평하는 능력을 동시에 기르는 것이다.
구두 방어라는 열쇠
가장 까다로운 문제는 수일에서 수주에 걸친 장문의 독립 연구다. 감독 없는 지속적 노력이 글쓰기의 핵심 가치인데, 그 노력을 AI가 대신했는지 감독 시험만으로는 걸러낼 수 없다. 학교의 해법은 우회로다. 졸업 요건인 실질연구논문(SRP)에 새 조건을 추가해, 완성된 초안을 제출한 뒤 지도교수와 대면으로 논문을 구두 토론하도록 했다. 일대일이든 학술 워크숍식 발표든, 학생은 논증의 근거와 함의를 캐묻는 질문에 실시간으로 답해야 한다. 기술에 기댈 수 없는 자리에서 사고의 진위를 검증하는 동시에, 법정·협상·의뢰인 상담에서 자기 논리를 즉석에서 설명하고 방어하는 실무 역량을 기른다는 이중 목적이다. 이는 AI를 떠나서도 정당화되는 능력이라는 점이 성명의 논리다. 임상 교육(클리닉)에서는 일반 리걸 AI와 거래·이민·소송 증거개시용 특화 도구까지 확보해, 실제 의뢰인을 상대로 AI와 함께, 또 AI 없이 일하는 감독된 경험을 제공한다.
실무자 관점에서 이 문서가 던지는 시사점은 로스쿨 밖으로도 확장된다. '금지냐 허용이냐'라는 이분법 대신, 역량 성숙도에 따라 통제 강도를 조절하고 결과물의 사고 과정을 대면으로 검증한다는 발상은 기업의 온보딩이나 코드·문서 리뷰 체계에도 그대로 옮겨 적을 만하다. 다만 한계도 분명하다. 이 모든 정책은 2026~2027학년도 시범 단계이며 검증된 성과 데이터가 아니라 자문과 경험, 신흥 학술 논의에 기댄 설계다. 기기 금지가 학습에 실제로 유리한지, 구두 방어가 AI 대필을 얼마나 걸러내는지는 아직 측정되지 않았다. 학교 스스로도 기술 변화 속도상 어떤 전략 성명도 최종본일 수 없다며 지속적 재검토를 전제로 달았다. 특정 도구를 다루는 훈련보다, 도구가 바뀌어도 적응할 분석력과 이론적 토대를 길러야 한다는 결론은 그래서 더 무겁게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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