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괄호는 왜 '수치스럽고 근사한' 문장부호가 되었나 — 시드니의 실험

괄호는 왜 '수치스럽고 근사한' 문장부호가 되었나 — 시드니의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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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는 괄호를 부차적인 정보를 담는 조용한 그릇쯤으로 여긴다. 그러나 르네상스 영국에서 괄호는 훨씬 논쟁적인 물건이었다. 문학 사이트 리터러리 허브에 실린 이 글은 셰익스피어 시대의 문장부호가 단순한 표기 규칙이 아니라, 당대의 기술 변화와 인간 내면을 탐구하는 통로였음을 짚는다. 당시 사람들은 부호를 라틴 전통을 따라 '구별(distinctions)'이라 부르거나, 문장 안 여러 높이에 점을 찍던 중세의 관습에서 나온 '포인팅(pointing)'이라 불렀다. 'punctuation'이라는 단어 자체는 1593년 번역가이자 어학 교사 존 엘리엇이 펴낸 프랑스어 대화책 『Orthoepia Gallica』에서 처음 등장한다. 엘리엇은 런던의 프랑스어 교사들에게 자신의 '점과 눈금과 재주(pricks, nicks, and tricks)'에서 흠을 잡아보라고 도발했다.

문장을 멈추는 기술

이 글의 중심에는 튜더 궁정의 스타였던 필립 시드니 경이 있다. 시인이자 열렬한 프로테스탄트 군인이었던 그는 네덜란드에서 가톨릭 스페인과 싸우다 총알이 허벅지에 깊이 박혀, 1586년 서른한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죽기 직전 그는 친구 베이어에게 '와 다오, 와 다오. 내 목숨이 위태롭다'는 떨리는 편지를 남겼지만, 의사가 도착했을 때 그는 이미 숨진 뒤였다. 기이하게도 그의 죽음은 그의 글쓰기를 닮아 있었다. 성전(聖戰)에 나서기 전, 그는 수년간 매달린 서사시적 이야기를 흥미진진한 전투 한복판에서 멈춰 세웠다. 그것도 문장을 완결하지 못한 채, 하나의 괄호 위에서. '아낙시우스가 뛰어 물러났다. 그 순간 부끄러워하며 (평생 그런 일을 해본 적이 없었기에)' — 이야기는 여기서 영원히 매달린 채 끝난다.

시드니에게 이런 중단은 단순한 미완이 아니라 하나의 작법이었다. 문장이나 이야기를 도중에 멈춘 뒤, 다시 펜을 들 때 괄호를 기억의 발판으로 삼는 것은 당시 흔한 작문 관습이었다. 그의 대표작 『아르카디아』는 변장과 시 경연, 난파와 납치, 재판과 전쟁이 뒤엉킨 어지러운 이야기인데, 그 안에서 괄호는 문체적 세련의 상징으로 쓰였다. 시드니는 이 작품을 두 판본으로 남겼고, 사후에 친구 풀크 그레빌이 1590년 급작스레 끊긴 '새' 판본을, 여동생 메리가 1593년 옛 판본의 결말을 이어 붙인 판본을 각각 출간했다. 서로 대응하는 부분에서 약 2,400개의 괄호가 거의 동일했다는 사실은, 이 부호가 그의 스타일에서 얼마나 의도적인 요소였는지를 보여준다.

방해인가, 봉합인가

괄호를 둘러싼 당대의 논평은 양가적이었다. 한편으로 괄호는 버려도 그만인 군더더기, 재치가 모자라 아무 데나 끼워 넣은 폐물로 취급됐다. 학교장 존 호스킨스는 1600년 저서에서 괄호가 '극단에 이르면' 우아함이자 동시에 불명예가 될 수 있다고 적었다. 조지 퍼튼햄은 1589년 『영시론』에서 지나치게 길고 본론과 무관한 삽입을 예로 들며, 그것이 '이야기에 큰 구멍을 내지만' 능숙하게 다루면 오히려 아름다움이 된다고 했다. 핵심은 괄호가 문장에 끼어든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어떻게' 끼어드느냐였다. 헨리 피첨은 여담이 허용되려면 미리 완벽한 길을 준비해 두었다가 '오래 지체하지 않고 교묘히 되돌아와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원리는 오늘날 정보를 다루는 사람에게도 낯설지 않다. 괄호는 문장을 자르는 동시에 그 앞뒤를 다시 꿰맨다. 로마 수사학자 퀸틸리아누스는 이를 '가운데에 무언가를 끼워 넣기(interpositio)'라 불렀고, 그 삽입이 얼마나 길어져야 본 문장을 납치하지 않는지에 대한 정해진 규칙은 없었다. 판단은 전적으로 글쓴이의 몫이었다. 문장을 벗어나되 전략적으로 벗어나고, 곁길로 새더라도 아치처럼 양 끝을 다시 잇는 것. 이는 코드의 중첩된 주석이나 조건 분기, 문서의 각주와 보충 설명을 설계하는 감각과도 통한다. 독자를 안팎으로 오가게 만드는 삽입은 정신의 유연성을 요구하지만, 남발되는 순간 혼란이 된다.

글은 괄호가 지닌 이중성 자체가 하나의 윤리라고 본다. 에라스뮈스가 '작은 달들'이라 부른 이 볼록하고 오목한 곡선은, 지나가는 말과 속삭임, 저자가 숨죽여 흘리는 비밀을 감싼다. 교장 리처드 멀캐스터는 괄호를 '펜에 속한 피조물이자 발음으로 구별되는 것'이라 규정하며, 그 안의 말은 앞뒤보다 낮고 빠른 목소리로 읽어야 한다고 했다. 시각적으로는 결코 지나칠 수 없으면서도 눈으로는 그냥 통과해 읽을 수 있는, 물과 뭍 양쪽에 걸친 양서류 같은 부호라는 것이다.

다만 이 글은 어디까지나 문학사적 해설이며, 시드니의 괄호를 실무 규범으로 곧장 옮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실험은 '웅변을 무엇보다 귀히 여기던 사회에서, 언어의 충만한 완성보다 그 지연과 중단, 실패를 그리는 데 더 관심을 둔' 시대적 맥락 위에 놓여 있다. 그럼에도 잠시 멈춰 생각할 여백을 만들고, 그 여백을 다시 본류로 봉합하는 기술이라는 점에서, 괄호는 여전히 정보를 구조화하는 모든 이에게 오래된 질문을 던진다. 무엇을 본문에 두고, 무엇을 곁가지로 물리며, 그 곁가지를 어떻게 다시 제자리로 되돌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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