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이 상업 플랫폼으로 급격히 재편되던 2002년, 이탈리아의 활동가 집단 오토이스티치/인벤타티(Autistici/Inventati)는 한 편의 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풀뿌리 운동과 사회운동 진영에서 활동하는 개인과 집단에게 웹사이트, 이메일, 메일링 리스트, 채팅, 블로그, 뉴스레터 같은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겉으로 보면 단순한 호스팅 제공자처럼 보이지만, 선언문이 밝히는 지향점은 기술 인프라를 정치적 실천의 도구로 재정의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이들이 내건 핵심 명제는 명확하다. 소통은 자유로워야 하고, 무료여야 하며, 따라서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 독립 서버였나
이 집단이 출발점으로 삼은 것은 '독립 서버 구축'이다. 상업 서비스와 유료 웹 공간의 논리 바깥에 서서, 자신들이 가진 기술과 지식을 같은 이상을 공유하는 이들을 방어하는 데 쓰겠다는 발상이다. 이 지점은 오늘날 자체 호스팅(self-hosting)과 탈중앙화 인프라 논의를 이해하는 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클라우드와 SaaS가 사실상 표준이 된 지금, 서버를 직접 운영한다는 선택은 비효율적으로 보이기 쉽다. 그러나 이들에게 서버는 단순한 연산 자원이 아니라, 누가 소통의 규칙을 정하고 데이터를 통제하는가에 대한 답이었다. 플랫폼 사업자의 약관과 검열 정책에 종속되지 않으려면, 인프라 자체를 스스로 쥐어야 한다는 것이다.
선언문은 자신들의 서비스가 어떤 용도로 쓰이지 않기를 바라는지도 분명히 밝힌다. 직간접적 상업적 이용, 조직화된 종교나 정당의 이용, 그리고 이미 자신의 생각을 널리 퍼뜨릴 충분한 수단과 자원을 가진 이들의 이용을 배제한다. 대의(representation)와 위임의 개념에 기대어 관계를 맺는 주체 역시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는 제공 자원이 한정된 자원봉사 프로젝트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를 선명하게 규정한 선택이며, 기술 서비스에 명시적인 가치 필터를 건 사례로 읽을 수 있다.
지식 공유와 자유 소프트웨어라는 정치
이들의 이름에는 각각의 문제의식이 담겨 있다. '인벤타티'는 발명하다·궁리하다는 뜻으로, 현실의 투쟁과 조직화가 가진 한계를 디지털 세계에서 극복할 방법을 찾겠다는 지향을 나타낸다. 선언문은 그 예로, 한 번 열리고 흩어지는 전체회의(plenum)를 메일링 리스트를 통해 상시적이고 연속적인 것으로 바꿀 수 있다고 설명한다. '오토이스티치'는 기술 도구를 이해하고 디지털 세계에 내재한 정치성을 드러내려는 열정에서 나온 이름이다. 소프트웨어가 가상 세계에서 만들어졌다고 해서 현실에 정치적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인식이다.
이런 인식은 자연스럽게 지식과 자원의 자유로운 공유로 이어진다. 이들은 문화적 자료와 자가 생산물, 문서를 체계적이고 조직적이며 완전히 무료로 배포하는 것을 장려하고, 전통적 저작권에 맞서며 자유·오픈소스 소프트웨어와 라이선스의 채택을 지지한다. 지식과 자원은 공유를 통해 자란다는 명제는 오늘날 오픈소스 생태계가 축적한 경험과 겹친다. 다만 이들이 말하는 공유는 개발 효율의 문제라기보다, 미디어와 소통이 정보 전문가의 독점적 영역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정치적 신념에 뿌리를 둔다.
운영 방식이 곧 메시지다
실무자 관점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이 집단의 운영 구조다. 이들은 후원이나 어떤 종류의 자금도 받지 않으며, 프로젝트가 중요하다고 믿는 이들의 자발적 기부만을 재원으로 삼는다고 밝힌다. 누구도 이 프로젝트로 한 푼도 벌지 않으며 오히려 그 반대라고 덧붙인다. 서버와 프로젝트의 기술적·정치적 결정은 모두 집단적으로 이뤄지고, 모든 논의는 메일링 리스트 등 매개된 소통을 통해 진행되어 참여자 누구나 접근할 수 있도록 공개된다. 조정자도 대변인도 없고, 결정은 투표로 내리지 않는다. 즉 조직 구조 자체가 이들이 주장하는 수평성과 자기관리(self-management)의 실천인 셈이다.
이 선언문을 오늘의 눈으로 읽을 때 유념할 한계도 분명하다. 20여 년 전의 문서인 만큼 구체적인 서비스 규모나 기술 스택, 성과 지표는 담겨 있지 않고, 어디까지나 원칙과 지향을 밝힌 강령이다. 자원봉사와 기부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모델은 지속 가능성과 확장성 면에서 뚜렷한 취약점을 안고, 이용자를 가치 기준으로 선별하는 방식은 보편적 인프라로 삼기 어렵다. 그럼에도 소통 도구를 상업 플랫폼에 온전히 맡길 때 무엇을 내주게 되는지, 인프라를 직접 운영한다는 선택에 어떤 정치적 무게가 실리는지를 다시 묻게 한다는 점에서, 자율 인프라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여전히 참고할 만한 좌표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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